안녕하세요. 1966년 서울 국립묘지가 있는 동작구 흑석동에서 출생하여 현재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슬하에 95년생 자녀 1명이 있는 60대 가장이며, 서울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1987년 민주화의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공업전문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설계 사무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원주택 내부 마감 공사를 담당하다 온돌용 합판마루 시공업을 창업하고, 누군가의 삶의 공간을 완성해 나가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자영업을 하며 희로애락을 벗 삼아 살아오던 중, 40대 중반에 예고 없이 찾아온 심각한 목 건강 문제는 저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땀 흘려 일궈온 저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결국 수술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고, 이는 저의 일상뿐만 아니라 직업 활동에도 심각한 제약을 가져왔습니다. 수술 후, 기약 없는 회복의 시간을 보내며,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절망감이 저를 덮쳤습니다. 오랜 시간 애정을 쏟았던 사업을 폐업하고, 갑작스럽게 맞이한 실직의 현실은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매서웠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둘째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은 저를 깊은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저는, 그동안 쌓아왔던 다양한 경험과 기술들을 되짚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설 관리 분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전기, 소방, 설비 관련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목공에서부터 배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쌓아온 실무 경험은 새로운 직장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취득한 기능사 자격증 등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실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저는 또 한 번의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익숙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저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2023년 1월, 저는 우연히 CQ-Net 과정평가형 용접 자격증 취득 과정 광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불꽃 속에서 철을 다루는 용접 기술은, 이전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용접기사 자격증 취득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저는 망설임 없이 도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습니다. 뜨거운 불꽃이 튀는 용접 작업장에서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낯선 용접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밤낮없이 매달려야 했습니다.
아크 용접, TIG 용접, 플럭스 코어드 아크 용접, 산소 용접 등 다양한 용접 기술과 이론을 배우는 것은, 50대 중반의 저에게는 젊은 학생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고된 여정이었습니다. 특히, 섭씨 수천 도에 달하는 뜨거운 불꽃과 쇳덩이를 직접 다루는 작업은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게 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 어려운 과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저보다 훨씬 어린 20대 학생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때로는 깊은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는 젊은 학생들을 보며, 혹시 내가 그들의 학습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미안함이 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용접 명장 고종수 스승님의 따뜻한 격려와, 묵묵히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젊은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배려였습니다. 서툰 저의 솜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밝은 얼굴로 저에게 도움을 주었고, 저는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포기하지 않고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이론 수업 시간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들었고, 실습 시간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우고,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터득해나갔습니다. 한여름의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무거운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장시간 용접 작업을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극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은 저를 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연습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용접기사 자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저는 그 어떤 성공보다 값진 감격과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종수 명장님과 학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뜨거운 불꽃 속에서 흘린 땀방울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수십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은, 단순한 자격증 취득 이상의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극복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CQ-Net 과정평가형 용접 자격증 취득으로 저는 기계설비 유지관리 특급 수첩을 발급받아, 현재 회사에 기계설비유지관리 팀장으로 당당히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저는 그동안 배우고 익힌 용접 기술과 이전의 시설 관리 경험을 융합하여 실무에 적용하며 다시 한번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용접 기술은 다양한 설비의 유지보수 및 보강 작업에 필수적인 기술이었고, 저의 숙련된 다양한 경험은 팀 내에서도 빠르게 인정받았습니다.
이제 저는 용접 기술뿐만 아니라, 기계설비 유지관리 전문가로서 팀을 이끌고 후배들에게 저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과거 인테리어 시공업에 종사하며 쌓았던 다양한 실무 경험과 각종 기능사 자격증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었고, 동료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더욱 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 끊임없는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건강 악화로 인해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포기해야 했을 때의 깊은 절망감,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한 불안감, 그리고 50대 중반의 나이에 낯선 용접 기술에 도전하며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들… 하지만 그 모든 시련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고, 더욱 발전하는 전문가로 성장하여 사회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용접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은, 단순한 스펙을 쌓는 것을 넘어, 50대 중반의 저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불꽃 속에서 흘린 땀방울은 결코 저를 배신하지 않았고, 저는 오늘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굳건하게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울림과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바리스타 2급 자격증에 도전 중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1년 전만 해도 제가 용접을 배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문과생'입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졸업장은 취업 시장에서 '무기'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어도 서류 탈락이 일쑤였고, '내가 과연 쓸모있는 사람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용접 과정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3D 업종이라는 편견, 뜨거운 불꽃과 쇳물...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더 컸습니다.
"손재주라곤 없는 제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훈련 첫날, 제 걱정은 현실이 되는 듯했습니다. 난생처음 만져보는 용접기는 무거웠고, 이론 수업은 외계어 같았습니다. 특히 저보다 어려 보이는 친구들이 능숙하게 용접봉을 녹이는 것을 보며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명장님의 1:1 지도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 실패를 두려워 마라"는 격려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매일 8시간씩, 장갑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연습했습니다. 손은 물집으로 성할 날이 없었지만, 삐뚤빼뚤하던 용접 비드(Bead)가 조금씩 일정한 모양을 갖춰갈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생긴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동기부여였습니다.
과정 수료 후, 저는 반도체 설비 관련 중견기업에 취업했습니다.
'경영학 전공'이 아닌 '용접 기술자 박OO'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막막한 미래에 고민하는 청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술'에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땀은 정직했고, 불꽃은 뜨거웠으며, 그 끝에서 저는 제 이름 석 자로 설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을 찾았습니다.
저의 도전을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7년간 단순 조립·검사직으로 근무했던 30대 여성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정해진 급여 상한선, 그리고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 경력 전환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무슨 용접이냐'는 주변의 시선도 많았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작업장의 험한 환경이나 체력적인 부담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며 TIG 용접(알곤 용접) 분야를 알게 되었고, 오히려 저의 꼼꼼한 성격과 손재주가 강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물론, 훈련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무거운 용접 토치를 들고 섬세하게 불꽃을 조절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남성 훈련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력이 부족해 처음엔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체력' 대신 '정밀함'으로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보다 얇은 박판(薄板)을 깔끔하게 용접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저의 노력을 알아봐 주신 훈련교사님께서는 TIG 용접의 핵심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셨습니다. 훈련생 동기들도 "누나, 손끝이 다르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여성'이라는 한계가 아닌, '김OO'만의 강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 저는 의료기기 부품을 제조하는 정밀 용접 분야로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섬세한 작업을 매일 해내고 있습니다.
이전 직장보다 연봉이 30% 이상 올랐다는 사실보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저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
저처럼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용접은 결코 남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가능성을 믿고 이끌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